‘전두환 회고록’의 5·18단체에 대한 명예훼손 사건 판결 (4) (명예훼손 손해배상 위자료 7,000만원, 2018나24881)


3. 당사자들의 주장

가. 원고들

1) 원고 5·18단체들

전두환은 이 사건 회고록을 집필하면서 ① 5·18은 북한군, 공작원, 간첩 등의 개입으로 벌어진 폭동이다, ② 5·18 당시 계엄군의 헬기사격은 없었다, ③ 5·18 당시 국군은 폭력시위 등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자위권 발동 차원에서 발포한 것이고 무고한 시민을 향해 총구를 겨눈 것이 아니다, ④ 전두환 자신은 5·18의 발단에서부터 종결에 이르기까지 관여한 바가 없기 때문에 학살에 대한 책임이 없다, ⑤ 1980. 5. 21. 옛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가 있기 전 시위대가 운전한 장갑차에 계엄군 병사가 치여 사망하였다, ⑥ 5·18 당시 ‘암매장’이 있었다는 것은 유언비어이다, ⑦ 5·18 당시 시위대는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비전향 장기수, 좌익사범, 간첩 등을 탈출시키기 위해 교도소를 집요하게 공격하였다는 내용 등의 허위사실을 포함시켰고, 피고 전재국은 출판자로서 위와 같은 허위사실이 포함된 이 사건 회고록을 출판 및 배포, 판매하였다.

이로써 전두환과 피고 전재국은 5·18민주화운동 관련 희생자들의 유족, 부상자, 공로자 등으로 구성되어 5·18민주화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계승, 선양하려는 목적으로 활동하는 원고 5·18단체들의 명예, 신용, 사회적 평가를 훼손하고 저해하였다.

2) 원고 조○대 전두환은 원고 조○대의 삼촌이자 같은 가톨릭 사제로서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는 조비오 신부의 헬기 사격 관련 증언을 두고 ‘계엄군의 진압 활동을 고의적으로 왜곡하려는 사람들의 악의적인 주장’이라고 폄하하고, 심지어 조비오 신부를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모욕함으로써 그 유족인 원고 조○대의 고인에 대한 추모감정을 훼손하였고, 피고 전재국은 출판자로서 위와 같은 내용이 포함된 이 사건 회고록을 출판 및 배포, 판매하였다.

3) 구체적인 청구의 내용

가) 각 삭제를 해제조건으로 하는 출판 등 금지청구

따라서 원고들은 이 사건 회고록의 출판자인 피고 전재국에 대하여,

(당초 저자인 전두환에 대하여도 같은 청구를 하였으나, 항소심에 이르러 피고 망 전두환의 소송수계인 이순자에 대한 이 부분 청구를 취하하였음은 앞서 본 바와 같다.)

인격권에 기한 방해배제청구권의 행사로서 별지 2 목록 기재 각 표현 및 별지 3 목록 기재 각 표현 중 ‘1심 판단’란에 ‘삭제’라고 표시한 항목의 해당 ‘내용’란 기재 각 표현의 삭제를 해제조건으로(원고 조○대는 그중 헬기 사격 관련 쟁점 표현들에 국한하여 청구원인으로 삼고 있다) 이 사건 회고록의 출판 등 금지를 구한다.

나) 손해배상청구

또한 전두환과 피고 전재국은 위와 같은 허위사실과 심히 모욕적인 표현들을 담은 이 사건 회고록을 집필, 출판, 배포함으로써 원고 5·18단체들의 명예, 신용, 사회적 평가 등 법인으로서의 인격권을 침해하고, 조비오 신부의 유족인 원고 조○대의 추모감정을 훼손하는 등의 정신적 고통을 가하였으므로, 피고들은 공동하여 원고들에게 그에 대한 위자료를 지급하여야 한다.

나. 피고들

피고들은 이 사건 소송에서 ‘어떤 표현행위가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였다고 볼 수 있는가’와 관련하여 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쟁점을 망라적으로 거론하며 다투고 있다.

그중에는 원고들의 주장 취지와는 맞아 떨어지지 않는 다분히 교과서적인 주장도 꽤 있다(예컨대 피고들은 “사회로부터 받는 객관적인 평가로서의 명예와 주관적인 명예감정은 구별되어야 한다”는 언급도 하나, 원고 5·18단체들은 단체 결성의 목적, 구성원들의 특성, 저명성, 그리고 5·18민주화운동을 기리기 위해 그동안 벌여 온 활동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이 사건 회고록의 표현이 그들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로서의 명예, 신용, 사회적 평가 등을 저해한다고 주장하고 있지, 단순히 그들 단체나 구성원들의 명예감정이 침해되었음을 청구원인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따라서 피고들의 진술 중 법적 쟁점을 형성하지 않는 것까지 하나하나 개별 판단의 대상으로 삼지는 않되, 그 언급의 취지만큼은 아래와 같이 의미 있는 주장들을 형성하는 배경들로 이해하여 반영하기로 한다.

1) 원고들을 특정하여 지칭한 바 없음(이른바 ‘피해자 특정의 문제’)

전두환은 이 사건 회고록에서 원고들을 직접적으로 거론하며 어떤 표현을 한 사실이 없다.

5·18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관하여 일정한 견해를 표명하였을 뿐이다.

특정한 대상을 구체적으로 지칭하지도 않았는데 공적 사안인 5·18민주화운동에 관하여 원고 5·18단체들과 반대되는 견해를 언급하기만 하면 해당 단체들의 명예를 훼손한 것으로 연결시킨다면 이는 피해자 특정의 법리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는 것이다.

2) 일정 규모 이상의 집단에 대한 명예훼손은 판례 법리상 인정되지 않고, 법인에 대한 명예훼손에는 이르지 않았음

이 사건 회고록의 5·18관련 표현들이 설령 ‘5·18민주화운동 참여자들’에 대한 언급을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 대법원은 개개인을 특정할 수 없는 큰 집단에 대한 명예훼손은 인정하지 않고 있으므로, 그것의 허위 여부와 관계없이 집단에 대한 명예훼손은 성립할 수 없다.

또한 법인에 대한 명예훼손은 자연인에 비해 성립 요건을 엄격하게 보아야 한다.

이 사건 회고록의 집필과 출간으로 인해 원고 5·18단체들의 목적사업 수행에 어떤 영향을 미칠 정도로 사회적 명성과 신용이 훼손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3) 의견표명과 사실적시는 구별되어야 함

진리의 검증은 자유로운 토론에 의해 달성될 수 있다.

전두환은 5·18민주화운동에 관하여 자신이 확보할 수 있는 자료들을 바탕으로 해석을 가미하여 일정한 견해를 표명한 것뿐이다. 5·18에 대한 해석을 원고 5·18단체들만 독점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견해를 표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이를 법적으로 재단함으로써 역사적 사건을 특정한 방향으로만 해석하여야 하는 제한을 두게 되면 다른 의견이 ‘숨 쉴 공간’이 없어져 표현의 자유가 본질적으로 훼손될 수 있다.

4) 표현이 갖는 의미는 책임주의 원칙에 따라 문언의 범위 내에서 해석하여야 함

전두환이 이 사건 회고록에 쓴 표현의 허위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해당 표현이 갖는 문언의 통상적인 해석 범위 내에서 그 의미를 파악하여야 하는데, 원고들과 제1 심은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 일정한 방향으로 해석을 가미하여 전두환이 실제로 하지도 않은 표현을 우회적으로 암시하였다고 단정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 잘못을 저질렀다. 이는 책임주의 원칙에 반한다.

5) 각론의 허위성 관련 주장

전두환이 이 사건 회고록에 적시한 사실관계는 모두 그가 확보한 객관적인 자료들을 바탕으로 서술한 것으로서 허위라고 보기 어렵다.

설령 일부 과장되거나 사실과 다른 부분이 섞여 있더라도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이를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허위사실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6) 귀책사유 관련 주장(손해배상청구 관련)

가) 고의·과실 부존재

원고들이 문제 삼는 표현들 중 일부가 설령 허위라고 하더라도 집필자인 전두환이나 출판자인 피고 전재국 입장에서 그것이 허위라는 점에 대한 인식이나 과실이 없었다.

원고들이 주장하는 사실관계 중 일부는 이 사건 회고록 집필 이후에 구체적인 증언들이 더 나오면서 밝혀진 것들도 있으므로, 그 부분에 대한 허위의 인식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나) 위법성조각사유

이 사건 회고록의 집필 및 출간은 전직 대통령으로서 그의 인생 전반, 그리고 그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들을 되돌아보고 후세에 기록으로 남기려는 차원에서 이루어졌는바, 원고들이 문제 삼는 이 사건 회고록의 각 표현들은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서 집필 경위나 참조한 자료의 내용 등을 고려하면 그것이 진실하다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으므로 위법성이 조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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