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회고록’의 5·18단체에 대한 명예훼손 사건 판결 (6) (명예훼손 손해배상 위자료 7,000만원, 2018나24881)


2) 5·18민주화운동 관련 허위사실의 적시가 원고 5·18단체들의 명예, 신용, 사회적 평가 등을 훼손하는지

민법 제764조에서 말하는 명예란 사람의 품성, 덕행, 명예, 신용 등 세상으로부터 받는 객관적인 평가를 말하는 것이고 특히 법인의 경우 그 사회적 명예, 신용을 가리키는데 다름없는 것으로, 그 명예를 훼손한다는 것은 그 사회적 평가를 침해하는 것을 말한다(대법원 1988. 6. 14. 선고 87다카1450 판결).

법인의 목적사업 수행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법인의 사회적 명성, 신용을 훼손하여 법인의 사회적 평가가 침해된 경우에는 그 법인에 대하여 불법행위를 구성한다(대법원 1999. 10. 22. 선고 98다6381 판결).

표현행위가 명예훼손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할 때에는 사용된 표현뿐만 아니라 발언자와 그 상대방이 누구이고 어떤 지위에 있는지도 고려해야 한다(대법원 2018. 10. 30. 선고 2014다61654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앞서 본 기초사실 및 위 1)항에서 든 증거들에 의하여 알 수 있는 아래와 같은 사실 및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전두환은 이 사건 회고록의 집필 과정에서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여러 가지 사실을 주장하였는데, 그중 허위사실이 포함되어 있을 경우 그러한 내용이 담긴 이 사건 회고록을 사회 일반에 배포하는 것으로 원고 5·18단체들의 명예, 신용, 사회적 평가를 훼손하는 결과가 초래된다고 봄이 타당하다.

가) 원고 5·18단체들은 5·18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의 유족, 부상자 또는 참가자로서 국가유공자인 사람 등으로 구성된 단체이다.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임의단체로 결성되어 활동하던 시절을 지나 정부가 인가한 사단법인을 거쳐 5·18유공자법에 의해 설립, 운영되는 법정단체(통상 ‘공법단체’라고 부른다)로서 현재는 일정한 법적,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고 있는 법인들이다.

나) 5·18민주화운동이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차지하는 역사적 의미, 원고 5·18단체들의 구성원이 그동안 5·18민주화운동 관련자로서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이 지체되어 받아 온 각종 불이익과 극심한 정신적 고통 등을 감안하면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한 허위사실의 주장을 널리 유포시키는 것은 위와 같은 지난한 과정을 거쳐 이제 법정단체로서 자리 잡은 5·18단체들의 지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위험이 있는 행위임이 명백하다.

특히 5·18단체들의 역사성과 현재 법정단체로서의 지위를 고려하면 그러한 위험으로부터 이들 단체를 법적으로 보호하여야 할 필요성과 가치도 충분하다.

다) 원고 5·18단체들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전두환의 대통령 재임 당시 임의단체로 있을 무렵 정권의 탄압 속에서도 군사반란과 내란으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의 치부를 드러내기 위한 활동을 용기 있게 지속해왔고, 그로인해 5·18민주화운동의 실상과 이른바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의 반헌법적 성격이 우리 사회에 제대로 알려질 수 있게 되었다.

이는 1987년 6월항쟁으로 이어져 자유민주적 헌법 질서를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의 민주정부에서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은 12·12, 5·17 군사반란과 5·18 관련 내란 행위에 합당한 법적 평가를 받았다. 이처럼 5·18민주화운동 참여자들은 5·18민주화운동 당시는 물론이고 그로부터 1987년 헌법 개정에 이르기까지 원고 5·18단체들(그 전신까지 포함)을 중심으로 결속하여 지속적으로 위와 같이 군사반란 및 내란 세력에 맞서 싸운 시민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0년 구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수차 개정을 거쳐 현재는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로 시행되고 있다, 이하 ‘5·18보상법’이라 한다) 및 1995년 5·18민주화운동법이 각 제정되어 포괄적인 명예회복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내내 억울하게 ‘폭도’ 라는 누명을 써왔다.

원고 5·18단체들이 광주시민과 학생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한 결과 현재는 상당 부분 5·18민주화운동의 진상이 규명되었고, 관련자들은 그 명예가 회복되어 국가유공자로 등록되거나 일정한 배상과 보상을 받기도 하였다.

위와 같은 원고 5·18단체들의 구성, 그동안의 활동 경과 등을 고려하면, 허위사실을 유포함으로써 5·18단체들의 지난한 진상규명 노력을 수포로 돌아가게 할 염려가 있는 표현행위는 그 사회적 해악과 위험성이라는 측면에서 통상적인 법인, 단체의 활동에 대한 사실 왜곡 행위와 같은 평면에 놓고 비교할 수 없다.

라) 더군다나 그 표현을 한 사람이 다른 사람도 아니라 전두환이라는 점은 5·18 단체들의 명예, 신용, 사회적 평가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측면에서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전두환은 내란이라는 정을 모르는 다수의 계엄군을 이용하여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한 광주시민과 학생들을 잔혹하게 유혈진압하였다는 범죄사실로 내란수괴죄의 유죄 확정판결을, 이른바 ‘광주 재진입작전(상무충정작전)’의 계획, 승인, 실행과 관련해서는 내란목적살인죄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장본인이다.

그러한 범죄전력이 있는 사람이 스스로 허위사실을 적시하여 5·18민주화운동의 성격을 왜곡하는 행위를 한다면, 피해자단체의 성격을 가진 원고 5·18단체들의 구성원들로서는 분노·격정·회한 등의 감정을 느끼고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게 될 것임은 누구라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다만 이 사건은 자연인인 그 구성원들이 직접 원고가 된 사건이 아니라 원고 5·18단체들이 법인으로서 명예훼손을 당하였는지가 쟁점인 사건이므로 구성원들이 받을 정신적 고통을 그대로 단체에 투영할 수는 없겠으나, 만약 법인에게도 자연인의 감정에 비견할 수 있는 어떤 ‘평온함’이라는 상태가 있다면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사실 적시로 그 평온함에 꽤나 격렬한 수준의 동요가 찾아 올 것임은 분명하다.

자연인이 받는 정신적 고통과 유사하게 단체 활동의 평온함에 격렬한 동요를 불러일으키는 표현행위 역시 직·간접적으로 그 단체들의 이후 상태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고, 그것은 결국 해당 단체의 명예, 신용, 사회적 평가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마) 법과 정치의 영역에서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5·18민주화운동이 어느 정도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를 찾게 되었지만, 우리 사회를 동서로 가르는 지역주의와 이념에 따른 극단적 진영주의 등의 영향으로 5·18민주화운동의 입법, 사법, 정치, 역사적 의미에 관한 시민사회의 합의를 부정하고, 이를 폄훼하려는 시도는 끊임없이 반복되어 왔다.

그 과정에서 원고 5·18단체들의 순수성과 정당성, 공공성 등에 대한 부당한 시비와 공격도 늘 뒤따랐다.

전두환의 5·18관련 표현들을 위와 같은 정치·사회적 맥락 속에 놓고 보면, 전직 대통령의 회고록이라는 형식을 띤 어떤 사실적 주장이 허위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그대로 방치한다면 그에 따르는 파장은 만만치 않을 수 있다.

즉 이 사건 회고록의 출간이 일종의 ‘방아쇠’와 같은 역할을 함으로써 그동안 공론의 장에서 합리적 시민들의 상식에 입각한 집단지성 앞에 겉으로 내놓고 표출하지 못하던 5·18단체들에 대한 부당한 시비와 공격, 폄훼가 봇물 터지듯 재발할 우려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도 전두환의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한 허위사실 적시는 결코 5·18단체들의 명예, 신용, 사회적 평가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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